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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 31. 미인계(美人計) -패전계(敗戰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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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 : 31. 미인계(美人計) -패전계(敗戰計)

선비가라사대 2018. 12. 29.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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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計 미인계(美人計) : 미인을 쓰는 계략.

 

"진(晋)나라 헌공(獻公)은 우·괵 두 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명마와 보석과 미녀 16명을 보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정을 혼란케 했다." -한비자-

 

삼십일계부터 삼십육계까지는 '敗戰計(패전계)'로 묶여있다. 이는 이미 전쟁에서 승기를 바랄 수 없는 경우,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계략들이 모여있다.

 

"병력이 강한 적이라면, 장수에게 작용한다. 장수가 지혜로운 자라면, 정서적인 약점을 공략한다. 장수가 약하고 병사들의 사기가 흩어지면, 스스로 붕괴된다. 적의 약점에 편승하여 힘쓴다면, 아군에게 유리하게 전환할 수 있다. [兵强者,攻其將;將智者,伐其情.將弱兵頹,其勢自萎.利用御寇,順相保也.]"

 

고대로부터 하왕조를 멸망으로 몰고 간 말희, 은왕조를 망하게 한 달기, 주왕조를 망조들게 한 포사, 오나라를 망하게 한 서시, 동탁을 죽음으로 몰고간 초선, 당현종을 죽게 만든 양귀비 등......역사에 카운터 펀치를 날려온 미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지도자 들에게 주색을 경계하기 위한 이야기로 많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적의 병력이 강하면 그 장수를 공략하도록 하고, 장수의 지모가 뛰어나면 그 예리한 통찰력을 약화시켜라. 장수의 지모가 약화되면 그 부대는 사기가 침체되어, 그 기세는 반드시 위축되기 마련이다. 점괘에 의해 유추해 보면, 마음속 깊이 자신의 복수의지를 숨겨놓고 적 내부의 약점을 이용해 공략해야 비로소 확실하게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병력이 강대하고 그 지휘자가 뛰어난 장수라면 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쪽에서 일시적이나마 순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적에게 순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국 시대의 6개국처럼 진나라에 국토를 진상하는 방법은 적의 세력만 강대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또 송나라가 요·금나라에게 그랬듯이 돈이나 비단을 헌납하면 적의 재력이 불어나므로 이것도 또한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미인계에는 이러한 약점이 없다.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에게 그랬듯이 미인계를 써서 부하들의 불만을 자극함으로써 질 것을 이기게, 약한 것을 강하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미인계

진(秦)나라 목공(穆公) 때의 일이다.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舞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이를 기뻐하여,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들어갔다. 좌우의 신하가 진나라의 침략을 염려하여 충간하면 융왕은 대노하여 활로 쏘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융왕은 술통 옆에 취하여 곯아 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그는 생포될 때까지도 진나라의 침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생포가 된 뒤에도 취하여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2. 왕윤의 미인계

초선은 삼국지 시대인 동한 말년 왕윤의 가기(요즘의 가수)였다. 그녀를 가리켜 천향국색(國色天香)이라 한다.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로 대단한 미녀라는 경성지모(傾城之貌),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모두 그녀에게서부터 나온 고사이다.

삼국지 초반에 나오는 희대의 동한왕조 간신 동탁에게 발견되어 정쟁에 이용되는 운명에 처한다.

이른 바 달밤에 분향하고 하늘에 기도하였다는 고사에 이용되었다.

그녀는 계략(이른 바 전형적인 미인계요 연환계)이 성공한 연후에 달밤의 후원에서 왕윤의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달에게 절했다.

그때 구름이 달을 가렸기에 왕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선의 미모에 달도 구름 사이로 숨어 버렸구나".

왕윤은 동한왕조를 찬탈하려는 동탁을 죽일 결심으로 계략을 꾸며 초선을 동탁 눈에 뜨이게 하였다. 왕윤은 먼저 여포에게 결혼을 약속하고, 바로 동탁에게 초선을 바친다.

 

여포는 물론 당대의 영웅이었으나 충분히 젊을 뿐이었다. 동탁 또한 늙은 간신이요 교활하기 그지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호색하기로는 둘째가기 서러운 둘은 양부와 양자가 되어 어울렸다. 초선은 바로 이들이 서로 칼을 들이밀 반간계의 비수로 쓰여진 것이다. 먼저 여포가 초선의 추파에 경도되고, 동탁 또한 아름다운 초선의 눈썹에 혼을 빼앗겼다.

 

여포가 어쩔 수 없이 초선을 동탁에게 빼앗기다시피 바칠 수밖에 없게 되자 마음속이 자연 불만으로 가득 찼다. 어느 날, 여포가 동탁부에 입부할 시 초선을 찾았다. 둘은 봉의정(鳳儀亭)에서 서로 만날 수 있었다. 초선은 동탁에게 받은 괴로움을 짐짓 토하였다. 여포는 당연히 분노하였기에 방천화극으로 동탁이 회부하기를 기다려 찔렀다. 여포는 바로 도주하였다. 당연히 두 사람은 서로 극히 미워하고 시기하게 되었다. 왕윤은 여포에게 동탁을 제거하기를 역설하고 여포에게 양부를 죽이게 한다.

 

3. 진평과 유경의 미인계

초한쟁패에서 끈질기게 항우에게 시비를 걸어, 결국엔 항우를 물리치고 漢(한)나라를 건국한 고조 유방, 한나라 내부를 어느 정도 정리하고 황제의 위에 오른 후, 흉노족 토벌에 나섰다. 항우와 유방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흉노족은 묵특 선우에 의해 통일되었다. 그리고는 국경을 수시로 침입해 오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방은 흉노족의 계략에 말려들어 작은 平城(평성)에서 40만 흉노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적은 병력으로 성에 틀어박혀 꼼짝없이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평이 계략을 내놓는다. 진평의 계략은 다음과 같다.

 

흉노의 장, 묵특은 여색을 아주 밝히는 자이다.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부인에게는 꼼짝을 못하고 잡혀 살았다. 그래서 진평은 화가에게 美人圖(미인도) 한 장을 그리게 하여, 보물과 함께 묵특의 부인에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묵특 선우께서 미인을 좋아한다 하시기에 미인을 바칠 생각인데, 마음에 드실지 몰라 먼저 그림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 그림을 보시고 마음에 드신다면, 곧 본인을 보내드릴 터이니, 대왕께 여쭈어 주십시오."

 

그러자 묵특의 부인은 유방이 이 그림같이 꽃 같은 미인을 바친다면 묵특의 총애를 잃을까 싶어, 묵특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한 혹시 유방이 미인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묵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한나라를 친다고 해도 우리가 한나라에서 살수도 없는 일이니, 군사를 물리는게 좋을듯 하옵니다."

이에 묵특 선우는 그 말을 타당히 여겨, 군사를 돌렸다.

 

겨우 살아 돌아온 유방이었으나, 흉노는 여전히 그의 골칫거리였다. 묵특 선우는 대군을 몰고 국경지대에 계속 침입해 왔던 것이다. 이에 유방은 군사를 일으키고자 진평과 유경에게 상의를 했다. 유경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천하를 평정하느라 너무 오랜 세월을 싸워왔습니다. 이제 다시 묵특을 무력으로 정벌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종실의 공주 한사람을 묵특에게 시집보내 화친을 맺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에 유방은 유경의 계략에 따라 공주를 시집 보내고, 매년 조공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묵특과 화친을 맺게 된다. 묵특은 잠시 침략을 멈추었으나, 국경지대에서 흉노에게로 투항하는 자들은 계속 노략질을 하곤 했다.

 

진평은 거짓 미인계를 써서 유방을 살렸고, 유경은 진짜 미인계를 써서 흉노와 화친을 맺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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